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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chiato

금강

달력의 날짜가 11월로 바뀐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부쩍 추워진 기온에 유단은 옷의 앞섶을 여미었다.

 

날씨 너무 한 거 아냐?! 불과 얼마 전까지는 더웠는데!

 

그렇게 외쳐봤자 뚝 떨어진 기온이 올라갈 리 없으므로 유단은 말을 삼키며 목에 둘둘 감은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으며 속으로만 앓았다. 잰걸음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이렇게 추울 줄 알았으면 경량 패딩이라도 꺼내 입을걸.

늦잠을 자는 탓에 평소처럼 바람막이만 걸치고 나온 것을 한탄했다. 그러나 평소 일기예보 확인을 잘 하는 편이 아닌 유단이었으니 오늘 바람막이와 목도리를 꽉 쥐고 추위에 떠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추워… 썰렁해… 추워… 썰렁해… 썰렁해… 추워…

 

이게 말로만 듣던 추위가 뼛속에 박힌다는 느낌인가.

손발이 시리고 몸에 한기가 도는 것이 생생했다. 응달 탓에 볕이 거의 들지 않은 건물 안 복도는 평소보다 더 썰렁한 것이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마저 들었다. 삽시간에 침대에 깔린 전기장판과 걷어차고 나온 이불이 너무도 그리워졌다.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하다. 빠르게 귀가하여 그 안전한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안 된다. 아니, 오늘은 안 되었다.

 

 

“그 여우가 단단히 토라져 버리면 나는 감당할 수 없다.”

 

 

유단이 반월당의 가지 않은지, 정확하게는 백란을 만나지 않은지 대략 석 달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학업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며칠은 밤샘을 하며 버티다 주말에 기절한 듯 잠들어 하루를 통으로 날려버렸을 정도였다.

 

백란을 비롯한 반월당의 요괴들은 유단 본인보다 더 학업에 진심이라, 얼굴을 못 비치는 것은 이해를 넘어 본인들이 강요하는 수준이기에 당초에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다. 종이여우나 부적을 날려 괴이나 잡것들이 유단의 방해를 하지 않도록 신경까지 써주니 되려 감사했었다.

 

그러다가 깨달은 것이다. 본인, 아니, 본 여우가 자각하고 있는지는 미지수지만, 근 석 달 동안 열심히 괴이와 잡것을 쫓아내던 종이여우가 언제부터인가 굉장한 시선으로 유단을 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냥 보는 것도 아니지. 노려보는 거지.

 

특히 조별 과제 등으로 유단이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에는 아예 창문 유리에 종이여우의 얼굴이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 횟수가 열 손가락을 넘긴 지 오래였다.

 

다행히 평범한 사람의 눈에 띈 적은 없는 것 같지만, 종이로 된 뾰족한 앞발을 야무지게 올려들고, 얼굴 면적을 유리에 딱 붙인 채 유단만을 보고 있는 그 압박하는 시선이 어찌나 강렬한지, 아무리 둔감한 유단이라고 해도 눈치를 안 챌 수가 없었다.

 

소유욕이라고 하던가…?

 

얼마 전에 미아가 유단에게 처분해버린 로맨스 소설에 그런 단어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했다. 단행본까지 사면서 재미있게 읽었는데 완결 부분에서 굉장히 실망하였다나. 사촌 동생이 책을 읽을 턱이 없는데 준다는 것은 반월당으로 가져가라는 의미겠지, 하고 받아들인 유단이 반월당 가게 한 쪽에 잡지와 함께 꽂아두었었다. 그리고 최근에 수려, 틈새, 옥린이 둘러앉아 그 로맨스 소설의 감상회를 가지고 있어 유단은 한 페이지도 읽지 않고 해당 소설의 줄거리와 인물관계도를 파악하고 있게 되었다.

 

분명 여주인공을 좋아하는 서브남 캐릭터 중 하나가 그런 성격이었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번처럼 장기간 가지 않았던 날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집 안에서, 학교에서, 바깥을 거닐다가 우연히 귀신이나 질 나쁜 요괴를 팰 때, 평소의 일상생활 중에 문득 돌아보면, 꼭 어딘가 구석에 숨어서 종이여우가 유단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처음 알아차렸을 때 바로 백란을 찾아가서 스토커냐고 따졌었다. 하지만 백란의 평소 행실이~로 시작하는 화려한 잔소리…가 아니라 언변에 유단은 장렬하게 패배를 통감하고 종이여우 스토킹을 일상의 한 부분으로 스스로 적응시켰다. 나중에 어차피 어느 이상한 수정구슬 때문에 유단의 사생활은 이미 반월당 요괴들에게 다 폭로된 후라는 깨달음이 찾아와서 새삼 뒷북이었음을 절감하고 이미 늦은걸 뭐 새삼 다시 따졌나 허무함을 느꼈다. 즉, 현실에서 도피했다.

 

뭐, 소유욕보다는 그…… 물가에 애를 두고 지켜보고 있는 심정? 그런 것 아닐까?

 

지금은 돌아왔지만 한때 이 땅을 떠났던 천호의 후계, 그 옛날 고대의 도깨비들의 왕으로 군림하였고, 천형죄인의 누명을 썼던 신라 삼왕자의 환생, 현재 유일하게 존재하는 천고의 보물 천안의 소유자.

 

필요도 없는 어마어마한 타이틀은 잔뜩 달려있는데, 정작 본인의 위기의식이 옅은 편이라 안 그런 척 할 뿐 유단의 신변에 관해 걱정이 많은 편이었다. 이전에도 경고만 전해주려 반년 만에 다시 하계로 내려왔다가, 온갖 생고생을 다 겪게 되면서도 그 와중에 유단을 우선으로 걱정했던 것이 백란이다.

 

한 번도 그랬는데 두 번은 안 그러겠어.

……한 번이 아닌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흐름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유단은 걸음을 멈추어 섰다. 발랄한 글씨체와 로고가 그려진 간판에 쇼윈도 너머로 보이는 깔끔한 내부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였다. 이용한 적은 없었지만, 일전에 조별 과제를 같이 했던 사람이 전통의 거리에 자주 간다고 얘기한 유단에게 가는 길에 있으니 한 번 가보라고 추천해주었던 가게였다.

 

 

 

* * *

 

 

 

“나왔어.”

 

 

사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정원 안에 은은하게 밝혀둔 초롱불이 한들거리며 유단을 반겼다. 힐끔 들여다본 가게 안은 텅 비어있었다. 손님도 반월당의 요괴들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드라마 볼 시간이던가?

 

안으로 들어서며 휘휘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고,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손님이 없을 수는 있지만, 아직 드라마 볼 시간은 아니었다.

 

뭐, 바로 돌아갈 것은 아니니 이따가 보겠지.

 

카운터 안쪽에 방금 전 사 온 디저트 상자를 올려두고, 유단은 곧바로 계단을 올라 위층 서재로 향했다. 문을 열어젖히자 활짝 열어둔 창문을 등지고 책상에 앉아 무덤덤하게 책을 읽던 백란이 눈동자만 살짝 들어 불쑥 들어오는 방문자를 맞이했다.

 

 

“에티켓이라고 혹시 아십니까? 누가 안에 있으면 먼저 노크부터 하고, 들어가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이제 와서 그런 것을 따지기엔 늦지 않았어?”

 

 

백란은 대답 대신 탁, 하고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안색이 평안하신 것을 보니 괴이에 휘말리신 것은 아니시고, 손의 그건 또 뭡니까?”

 

 

평상시와 똑같은 말투다. 하지만 유단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살짝 토라져 있다.

 

 

“오는 길에 보니까 커피가 맛있다는 얘기를 들은 카페가 있길래. 한 번 사봤어.”

 

 

테이크아웃용 일회용 컵 두 개가 꼭 맞게 들어간 캐리어 백을 책상 위에 올려두자, 백란의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커피 냄새에 섞여 단 냄새가 나는데…… 이 냄새는 캐러멜이군요. 전 단 것을 싫어하는데요.”

“걱정 마. 그 캐러멜이 들어 간 것은 내가 마실 거니까. 네 것은 안 달아.”

 

 

잘 보니 유단이 제 앞에 가져다 놓은 컵의 뚜껑에는 뭔가 적혀있고, 백란 앞에 놓인 컵의 뚜껑은 깨끗했다.

빨대를 꽂는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연갈색 위에 하얀 점이 일그러진 채로 둥둥 떠 있었다.

평범한 카페라떼 인가?

 

 

“…그럼 잘 마시겠습니다.”

 

백란은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부드럽게 휘감는 우유의 바로 뒤로, 강렬하게 강타하는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의 쓴 맛에 백란의 귀가 11자로 쫙 펴졌다.

 

 

“이게 뭡니까?!”

“응? 에스프레소 마끼야또Espresso Macchiato.”

“네?”

“커피 종류 중 하나인데… 아, 혹시 몰라?”

“아니요. 지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추출한 에스프레소 커피에 스팀을 낸 밀크를 올린 커피를 마끼야또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보통 마끼야또라고 한다면 양탕국 카페라면 하나씩은 있는 캐러멜시럽이 들어간 커피인 캐러멜 마끼야또Caramel Macchiato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캐러멜시럽이 첨가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고, 원래 에스프레소 방식으로 추출한 커피에 스팀 밀크를 올린 음료는 전부 마끼야또라고 불린다. 확실히 잔을 건네주기 전에 유단이 말한 대로 백란의 음료에는 캐러멜은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보통 마끼야또 자체가 맛이 진한 편이라 추가로 설탕을 넣어줄 텐데요.”

 

 

다른 첨가 시럽의 흔적조차 없었다. 심지어 마끼야또와 비슷한 레시피로 우유보다 우유 거품이 더 많은 카푸치노보다 우유의 양도 적었다.

 

 

“당연히 안 넣어 달라고 했지. 너 단 것 싫어하잖아. 그리고, 설탕이나 시럽을 넣으면 ‘에스프레소’라는 이름이 그대로 안 붙지 않아?”

“맞는 말씀이십니다만, 이건 써도 너무 쓴 데요. 혹시 저한테 악감정 있으십니까?”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걸로 복수할 만큼 쪼잔하지는 않거든?! 뭐야, 기껏 너 단 거 싫어하니까 일부러 골라서 사 왔는데… 안 먹을 거면 내 것이랑 바꿔. 이건 캐러멜 마끼야또라 그렇게 안 달아.”

 

 

유단은 두 모금 남짓 마신 제 커피를 백란의 앞에 밀어주고, 백란이 내려놓은 커피를 제 앞으로 가져왔다. 한 모금 마셔보니 확실히 유단이 마시고 있던 것보다 커피의 쓴 맛이 강했다.

 

 

“쓰긴 하네. 근데 못 마실 정도는 아니야.”

“그건 의외군요. 써서 못 마시겠다고 난리를 치실 줄 아셨는데.”

“아… 아마 예전이었다면 못 마셨었을 텐데, 요즈음 밤샐 일이 많다 보니 라떼 종류가 아니더라도 종종 마셨어서… 써도 그럭저럭 버티고 마실 수 있게 되었어. 그렇다고 에스프레소 원액을 마시는 건 무리고. 아, 아포가토로 마신다면 괜찮나?”

“그것도 아이스크림이 어느 정도 에스프레소를 중화시켜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닙니까?”

 

 

그렇네. 짧게 대답하고 유단은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결국 이러나저러나 에스프레소 자체로 마시는 건 무리라는 결론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저한테 악감정이 있으시다니 참 유감이군요. 제가 평소 좀 잔소리를 하긴 했지만 다 잘되라고 그런 것인데, 원한을 품고 복수 할 것을 생각하고 있으셨다니. 적반하장도 유분수 아닙니까?”

 

 

쿨럭.

마시던 커피가 하마터면 잘못 넘어갈 뻔했다. 우아한 동작으로 유단과 바꾼 커피를 마시며 조곤조곤 말하는 백란의 말에 유단은 아까 무의식중에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따금 입이 방정이었다. 아니, 하지만.

 

 

“악감정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불만 정도는 가질 수 있잖아? 저번에도 한 번 따졌는데, 요즘 종이여우로 날 감시하는 게 점점 심해지고 있잖아. 나도 내가 바보인 건 잘 알고, 그 뭐냐. 능력에 비해 분에 넘친다고 하나? 그래서 불안 한 건 알겠는데, 창문에 찰싹 달라붙어 노려본다거나 그럴 필요는 없잖아. 혹여 다른 사람 눈에 들킬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 한 줄 알아?”

“네? 제가요?”

“응. 네가.”

 

유단의 대답에 백란이 턱에 손에 가져다 대고 짐짓 생각하는 시늉을 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스치듯 미미하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펴지는 것을 유단은 놓치지 않았다.

 

 

“거 봐, 찔리는 게 있지?”

“없는데요.”

“눈살 찌푸리는 것 다 봤거든?”

“기분 탓이겠죠.”

“아니, 분명히 봤거든?!”

“…엄한 사람, 아니, 엄한 천호 잡지 마십시오. 그냥,”

“그냥?”

 

 

호로록, 뜸을 들이면서 백란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유단이 아무 말 없이 눈으로 다음 말을 재촉하자, 하는 수 없이 말을 잇는데, 무의식적으로 백란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방황했다.

 

 

“……여성분께 붙어서 감언이설로 추파를 던지시는 모습이 보기 흉해서, 제가 다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났을 뿐입니다.”

 

 

푸웃.

이번에는 제대로 커피가 기도를 건들었다. 다행히 유단이 재빨리 고개를 창밖으로 돌린 덕에 백란의 얼굴에 그대로 커피가 분무 되는 사태는 피했지만, 성대하게 걸린 사래 때문에 목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은 피할 수 없었다. 한참을 좀처럼 멎지 않는 기침을 진정시키며, 어느 정도 숨을 고른 다음 유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무슨 해괴한 소리야?!”

“최근 공부와는 전혀 상관없는 커피 지식이 늘지 않으셨습니까. 무슨 이유인가 하였더니, 다 여성분께 작업을 걸기 위해서 일 줄 이야…… 이번에도 학업으로 바쁘시다고 하시면서, 어느 여성분과 자주 같이 있는 모습 잘 보았습니다. 물론 옛날이면 진즉에 혼인하고 남으셨을 나이이시고, 한창 연애에 불탈 청춘의 나이라지만 설마하니 얼마 되지 않는 공부 머리로 학업과 아무 상관 없는 커피 지식을 익혀 그것으로 연애 노름을…….”

“타임! 그만! 아니, 잠시 있어 봐! 아니, 하아, 허. 하아… 야, 아니야! 그거!”

 

 

안 그래도 사래에 들려 붉어져 있던 유단의 얼굴이 점점 더 붉어졌다. 어떻게든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여러 차례 심호흡을 반복하다가, 겨우 말을 이었다.

 

 

“반대! 반대야! 내가 커피에 대해 따로 공부한 게 아니라! 그 여자애가 가르쳐준 거라고! 그리고 연애고 뭐고, 단순하게 수업에서 조별 과제를 해야 하는데, 그쪽에서 먼저 같이 하지 않겠냐고 해서 과제 때문에 같이 있었고 조금 친해진 거지. 아무 사이 아니야! 아무 감정 없다고! 남자랑 여자랑 같이 있다는 이유로 다 커플인 건 아니잖아?”

“그렇게까지 부정하실 필요는……”

“진짜라고! 네가 있는데 내가 한눈을 팔겠어?! 워낙 과제랑 시험이 많다 보니 카페나 편의점에 자주 갔는데, 그때마다 숨 돌릴 겸 여자애가 자기가 커피에 관심 많다고 이것저것 얘기해준 것뿐이야! 너도 있는데 다른 애한테 호감을 가질 리가 없잖아!”

“네?”

“응?”

 

 

백란이 눈이 동그래지자 유단도 말을 멈췄다. 표정근육이 일을 팽개치고 있는 백란으로선 지금 표정은 많이, 아니, 상당히 놀란 표정에 가까웠다.

 

‘네가 있는데 내가 한눈을 팔겠어?’

‘너도 있는데 다른 애한테 호감을 가질 리가 없잖아.’

 

이 두 말이 백란의 머릿속에 반향하며 천둥처럼 울렸다. 여러 차례 곱씹어도 보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려 해도 그 두 개의 말은 「사귀는 사이에서」 상대에게 바람피운 적 없다고 항변하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사귀는 사이.

사귀다. 동사. 서로 얼굴을 익히고 친하게 지내다. 단순한 인간적 친교에서부터 연애戀愛적 관계까지를 두루 일컫는 말이지만 보통 후자의 의미로 더 많이 쓰임.

 

사귀는 사이…?

 

 

“…저희가, 사귀는 사이었나요?”

“어? ……어?”

 

 

겨우 원래의 안색으로 돌아온 유단의 얼굴이 잠시간의 침묵 후에 펑, 하고 불꽃이 터진 것처럼 확 붉어졌다.

 

사귀는 사이이긴 하지. 맨 처음의 전생서부터 지금의 유단까지, 스쳐 지나갈 뿐이었어도 얼굴을 익히고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

하지만 단순히 그 의미라면 유단이 저런 반응을 보일 리 없었다.

 

사과처럼 붉어진 얼굴.

정처 없이 흔들리는 눈동자.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말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

눈에 띄게 동요하는 모습.

 

연애적으로 사귀는 사이가 아닌데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말이 튀어나올 수 있는 또 다른 이유. 그건,

유단이, 백란에게 그런 쪽으로 마음이 있을 때.

 

‘아, 어떡하죠.’

 

점점 더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로 아직도 횡설수설하는 유단을 보며 백란은 여우처럼 웃었다.

 

‘캐러멜이 너무 달아서, 입 안에 남아있는 것 같군요.’

 

언제부터인가 쓰디쓴 커피의 맛은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 fin

© 202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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